몰아보기 좋은 영화 시리즈 영화 베테랑 1, 2편 리뷰
누군가는 가족을 잃은 순간부터, 누군가는 억울한 누명을 쓴 그날부터, 또 어떤 이는 사회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무너졌던 그 지점에서부터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심리적 균열이 어떻게 서사의 구조 속에서 쌓여가며, 결국엔 돌이킬 수 없는 폭력이나 파괴로 이어지게 되었는지, 그 내면의 움직임을 천천히 들여다보려 한다. 단순한 가해자로 보이기엔 그들이 감당해온 고통이 너무 컸기에, 그 변화의 과정은 더할 나위 없이 복잡하고 깊은 질문을 남긴다. 이 글에서는 단지 인물이 괴물처럼 변해갔다는 결과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의 출발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모든 괴물이 처음부터 괴물로 태어난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영화 속 인물들을 들여다보면, 처음부터 악의적인 존재였던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상처를 입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사회로부터 버림받거나, 오랜 시간 가정폭력이나 빈곤 같은 구조적 억압 속에서 살아온 인물들이 많다. 그들은 처음엔 누구보다도 약하고, 누군가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런 고통이 오랫동안 외면당하거나 해소되지 못하고 내면에 쌓이면, 그 감정은 점점 변형되기 시작한다. 분노는 응어리가 되고, 응어리는 곧 분출되지 못한 채 곪아간다. 결국 어떤 계기를 만나 폭발하게 되면, 그 방향은 자신을 해치거나 타인을 상처 입히는 방식으로 향하게 된다. 그렇게 관객은 점점 괴물로 변해가는 사람의 얼굴 속에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피해자’의 그림자를 함께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그 모습은 우리에게 묘한 감정을 안긴다. 연민과 두려움, 그리고 질문. “나는 저런 상황에서 과연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
<친절한 금자씨>(2005)의 금자(이영애)는 유괴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복역한 뒤, 자신을 파멸시킨 인물에게 복수를 계획한다. 그녀는 피해자였지만, 그 복수의 과정에서 점점 감정이 희미해진다. 정의를 위한 복수는 차갑고 정교한 폭력으로 이어지고, 관객은 그녀가 지닌 고통에 공감하면서도, 그 과정이 남기는 섬뜩함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악마를 보았다>(2010)의 장경철(최민식)은 처음부터 괴물로 등장하지만, 영화 속 또 다른 주인공인 수현(이병헌) 역시 점점 괴물로 변해간다. 약혼자를 무참히 잃은 그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장경철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만들기 위해 끝없이 고통을 준다. 그 과정에서 수현은 점점 자신도 파괴되어가는 것을 인식하지만, 멈출 수 없다. 이 영화는 피해자였던 인물이 어떻게 괴물과 닮아가는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박하사탕>(1999)의 김영호(설경구)는 한때 순수했던 청년이었지만, 시대의 폭력과 개인적인 상처가 쌓여 점점 냉혹한 존재로 변해간다. 그는 피해자였지만, 점차 그 고통을 타인에게 되돌려주는 가해자의 얼굴을 갖게 된다. 영화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구조 속에서, 그가 왜 괴물이 되었는지를 하나씩 보여주며, 무너진 인간성의 전환점을 서서히 드러낸다. 김영호의 변화는 단순한 타락이 아니라, 시대와 개인의 고통이 뒤엉켜 만들어낸 복잡한 결과다.
<몬스터>(2014)의 복순(이민기)은 어린 시절 가정폭력과 학대를 겪으며 자란 인물로, 사회에서 철저히 외면당한 피해자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는 자신이 받았던 고통을 타인에게 그대로 되돌리는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한다. 복순은 무차별적인 폭력을 저지르며, 스스로를 괴물로 만들어간다. 그의 캐릭터는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넘어가는 전환이 얼마나 빠르고 파괴적인지를 보여주며, 고통이 인간의 도덕성과 감정을 어떻게 지워가는지를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관객은 그를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점점 두려워하게 된다.
<26년>(2012)의 곽진배(진구)는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가족을 잃은 생존자다. 그는 평범한 경호원이지만, 마음속엔 오랜 시간 응어리진 분노와 고통이 쌓여 있다. 영화 속에서 그는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자신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믿는 대상에게 복수를 결심하게 되고, 그 선택은 정의와 폭력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흔들린다. 곽진배는 분명 피해자지만, 복수를 결행하는 순간에는 가해자의 얼굴을 하게 된다. 이 캐릭터는 고통이 어떻게 공동체적 분노로 변하고, 결국 폭력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괴물이 된 인물들은 대부분 처음엔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들이 극단적인 존재가 된 이유는 대부분 고통 때문이다. 감정의 응어리는 해소되지 않고, 사회는 그들을 외면하거나 조롱했고, 그 결과 그들은 혼자서 싸우거나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런 인물들을 볼 때마다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한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는 공감이 들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두려워진다. 그들이 겪은 고통과 변화가 전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까. 그런 인물들의 감정선과 무너지는 과정은, 단순히 영화 속 한 캐릭터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어둠과 마주하게 만든다. 피해자였던 인물이 어느 순간 괴물처럼 변해가는 그 순간이 꼭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어쩌면 그 전환점은 우리 안 어딘가에도 이미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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